'16년 패션 한 길' 이 전 사장 갑작스러운 퇴장, 사업축소 등에도 "매각은 절대 없다"

이서현 전 삼성물산 패션부문 사장 <뉴스1>

[한국정책신문=한행우 기자]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 축소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업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물산과 합병 이전인 제일모직 시절부터 패션 한 길만 고집해 온 이서현 사장이 돌연 퇴임, 충격을 안긴 데다 실적 악화 등의 악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서다. 

부진한 브랜드를 전면 철수하는 등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는 게 업체 측 입장이지만 이 사장의 갑작스러운 퇴진에 대한 분분한 추측과 잠들지 않는 매각설로 어수선한 상황이다. 

21일 패션·유통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20년간 운영하던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빨질레리’의 국내 라이선스 사업을 중단키로 결정했다.

빨질레리는 이탈리아 원단과 제조 방식을 적용한 명품 브랜드로 국내에선 삼성물산 패션부문(당시 제일모직)이 1989년부터 라이선스 방식으로 판매해왔다. 빨질레리의 41개 백화점 매장은 올해 상반기 까지만 운영되며 이후 폐업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 초에는 캐주얼 브랜드 ‘노나곤’을 정리키로 했으며 지난해에는 야심작 ‘에잇세컨즈’의 중국매장을 접었다. 2016년에는 남성복 ‘엠비오’와 핸드백 ‘라베노바’ 브랜드 운영을 중단했고 ‘빈폴키즈’ 백화점 매장을 철수하기도 했다. 

부진한 실적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이다. 

노나곤은 K팝 열풍에 편승해 2014년 당시 제일모직이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선보인 스트리트 캐주얼 브랜드다. 양사가 시너지를 내기는 커녕 2015년 14억원의 손실을 냈고 이듬해 13억원, 2017년 18억원, 지난해 3분기까지 14억원의 순손실을 연달아 기록했다. 

이서현 전 사장이 기획 단계부터 공을 들인 ‘에잇세컨즈’는 ‘8초만에 시선을 잡겠다’며 야심 차게 중국시장에 진출했지만 참패했다. 지난 3년간 에잇세컨즈 중국법인의 누적 손실액은 261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LF,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 등 주요 패션 대기업 상장사들이 성공적인 장사를 한 가운데 홀로 실적이 둔화돼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매출액 1조7590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하락했으며 영업이익은 250억원으로 24.2%나 떨어졌다. 

수익성 지표도 최악이다. 한섬의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7.08%, LF는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6.29%, 신세계인터내셔날은 4.39%를 기록한 반면 삼성물산패션의 영업이익률은 1.87%에 그쳤다. 사실상 ‘본전 장사’를 했단 얘기다. 

삼성물산 내에서의 입지도 좁다. 삼성물산의 사업부분별 매출 비중을 살펴보면 2017년 기준 상사와 건설이 각각 42.9%, 40.9%를 차지하고 있고 패션은 6.0%에 불과하다. 자산비중도 패션은 4.9%로 건설 39.4%, 바이오 28.8%에 한참 못 미친다.

업체 측이 ‘사실무근’이라며 선을 긋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매각설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인수 대상자로 롯데백화점이 거론되는 등 소문은 구체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장퇴진·실적하락·사업축소라는 3가지 ‘팩트’가 맞물려 매각설에 힘을 싣고 있는 까닭이다. 

지난해 말 이서현 사장이 돌연 삼성물산을 떠난 뒤 패션부문은 박철규 부사장이 대표를 맡아왔다. 사장 자리는 공석이다. 이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 패션 사업에 힘을 실어줄 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서현 전 사장이 오빠인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떠났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패션사업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질’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상 이 전 사장이 지난 16년간 회사의 패션부문을 홀로 책임져 왔으나 그룹 차원에서 의미 있는 사업으로 성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남편인 김재열씨도 지난해 5월 한직인 삼성경제연구소 스포츠마케팅 연구담당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에서 이들 부부의 ‘2선 후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분분한 상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3세 경영체제에 진입하면서 전자는 이재용 부회장, 호텔은 이부진 사장, 패션은 이서현 전 사장이 각각 전담하는 ‘삼각구도’가 유지돼 왔으나 그 구도에 균열이 생긴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삼성물산 측은 패션부문 매각설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밖에서는 그렇게(매각 가능성이 있다고) 보일 여지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사업이 지속적으로 부진하면 이런 얘기들이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걸 안다”면서도 “매각은 불가능한 얘기”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삼성의 근간으로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팔 수 있는 사업은 아니라는 게 회사 측 입장”이라며 “매각은 전혀 검토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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